대전 가볼만한곳 우암사적공원 과 동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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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info
쉬는 평일..
다들 어디다녀 오셨나요?
저희 송패밀리는 대전 가볼만한곳
우암사적공원과 동춘당에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서울에 궁을 보러갈까? 했는데
송파파가 많이 아파서
약기운을 빌려 가까운 곳을 가기로 했지요 .
대전에 20년을 살았어도
우암사적공원에 들어가 본적이 없어요.
어디 중요 문화재를 찾는다 해도 꼭 지방을 다니게 되지
근처에서 찾지 않았으니..
오늘 이렇게 대전 가볼만한곳을 다니면서
숨어있는 명소를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우암사적공원은
조선 중기 대표 유학자 송시열 선생께서
효종과 함께 북벌정책을 강구하던 곳이였어요.
또한 송자대전을 만든 곳이기도 하지요.
특히 한국에서 유일하게
수맥을 흐르는 통로를 그대로 보존한
남간정사는
오늘 KBS에서도 촬영을 하고 갔다해요.
들어서는 입구 부터 연못과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개울의 물소리
남간정사 앞으로 큰 연못과
주변에 물길이 어우러져서
정말 특이하게 조성이 되어있었어요.
앞이 연못기에
들어가는 입구도 뒤로 돌아서 가야 한다죠.
이런 대표적 유적지로는 석굴암이 있죠.
물론 일제시대때 이렇게 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을
살려 과학적으로 건축한 것을 그들은 알 수가 없으니
시멘트를 발라 지금 엉망이 되었지만
남간정사는 잘 살아 남았네요.
인조때 금나라에게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낸
효종이 북벌정책을 펼치려할때
송시열 선생이 힘을 보태게 됩니다.
물론 나중에는 허울뿐이라고 하여
효종이 승하 하자마자 내쳐지게 되지만
이곳에서 제자를 기르고
"주자 와 율곡 이이" 의 뜻을 받들어
송자대전을 집필하니
대단하셨던 분입니다.
이렇게 특이한 곳인데
그냥 유형 문화재 4호 라니...
아마도 우리나라 궁을 비롯해 몇몇 곳은 렇게 물길을 살려
조경한 곳이 일본에 의해 다 망가졌을텐데 말이죠.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며 보존이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좀 더 큰 유물로 지정되서
많은 분들이 보고 알게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간정사 바로 앞 경치 입니다.
와~소리가 절로 나고
정말 너무 이쁘에
이런 경치에서 책읽으면 머리가 절로 맑아질것 같습니다.
워낙 터가 넓기에
걸어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인함각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해설도 들을 수 있고
우암선생의 영상자료도 볼 수 있어서
진짜 알찬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연보가 제일 먼저 들어옵니다.
천재적 두뇌를 가진 아버지 송갑조님
지금 으로 따지면 행시와 사시에 다 패스한
생원시 진사시에 다 합격을 해 놓고도
벼슬길에 올랐을때 광해군이 서궁에 유폐시킨 인목대비(선조의 계비)를 배알하였다하여
결국 쫓겨나 송갑조 선생은 아들 교육에 힘을 쓰게 됩니다.
송씨가 송촌동 선비마을에 자리잡게 된 사연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전 그 당시에도 딸들에게도 재산을 똑같이 나눠 주었다고 해요.
송명의 선생이 회덕황씨부인과 결혼하여 의 친정쪽으로 내려오는데
황씨부인이 받은 유산이 대전에 보문산 대청호 주변 일대의 땅을 물려받아서
이 곳에서 은진 송씨가 자리메김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때까지만 해도 외가는 엄청 중요한 자리였다는게 보이지요?)
고려말 송유(송명의선생의 손자) 부터 송씨가문이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된다고 하죠.
여튼 송시열선생은
태어날때부터 가진 배경이 학자집안에다
성품이 올곧기까지 한 집안입니다.
연보가 글씨가 너무 많아서 어려우시다면
7분 가량의 영상을 보시면
훨씬 정리가 쉽구요
해설을 부탁드리면
무료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인함각 한바퀴를 쭉 돌며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27세때 장원 급제한
시험지를 사진으로 볼 수 있구요.
시험 겉면에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을 비롯해
외가 지역까지 쓰는 것을 보면
이때 과거는 개인의 출세가 아닌
집안을 대표하여 시험을 보는 것이라고 하니
엄청난 도전이라 생각이 됩니다.
효종을 독대하고 두달만에 효종이 승하합니다.
당연히 북벌정책도 물건너 가게 되고
벗처럼 친히 여기자던 효종께서 돌아가셨으니
슬픔이 대단하셨겠죠.
그리하여 남기신 부끄러울 '치'
이 분이 또 명필이라..
산과 계곡 바위에 이분의 글지체로 새겨진
바위가 엄청 많다고 해요.
그분의 초상화만 보아도
선비의 넓은 품이 보입니다.
따님이 한글로 쓰신 글도 보이구요.
효종이 사사한 초구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암사적공원에서
절때 빼놓지 않고 봐야할 것이
바로 송자대전판 인데요.
우암선생이 주자를 연구하며
문집과 연보등을 집대성한
'송자대전'을 찍어내던 목판입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처럼 곳에
그 목판이 보관중입니다.
임진왜란때 한번 불에 타 없어졌으나
그의 제자들이
1929년 남간정사에서 다시 판각한것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1929년이면 한창 일제강점기인데..
그의 제자들은 이 목판을 만들기 위해
그 시기의 수고로움을 어떻게 감당한 것인지..
가치가 정말 높다고 봅니다.
바로 눈앞에 '송자대전'이라고 되어있지요?
워낙 출중했던 인물이나..
그때 당쟁때문에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어요.
결국 나중에 영조때가 되어 그의 학문적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이 공인되어 졌습니다.
아직도 우암사적공원은 복원 중이라 하구요.
처음 복원을 시작하신 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데
송시열 선생의 뜻을 받들고자
여기를 궁처럼 짓고 싶다 하셨다 해요.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가볼텐데요.
명정문을 들어서면
강당으로 쓰던 이직당이 보이고
그 뒤로 선비들의 공부방인 심결재와 견뢰재를 볼 수 있답니다.
날씨가 좋아서
건물들이 자연속에 더 예쁘게 묻혀있는 것 같아
더욱 보기 좋게 사진으로 남았네요.
동춘당
대전 가볼만곳으로 찍어놓고 방문한 곳이
사실 우암사적공원 보다 먼저 드른 동춘당인데요.
최근에 보물로 지정 되었다기에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실망...실망이였습니다.
우선 동춘당은 우암송시열 선생과 어린시절부터
함께 동문수학한 송준길 선생의
호를 딴 별당입니다
그 동춘당을 기준으로
동춘당공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지요.
보물 209호로 지정된 동춘당 별당과
바로 옆 종택이 있는데요.
저는 어느 보물을 이렇게 막관리하고 사용하는지..
너무 황당했다고 해야하나..
별당 내에는
시 낭송회와 떡 장인이 만든 떡을
방 안에 전시하고 있었어요.
음....
글쎄요.
국보나 보물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아껴서 사용해야할것 같은데
주변에 호연재 김씨 종택이나
고택들은 다 문이 잠겨 볼 수도 없는데
보물이란 곳이...이렇게 막 쓰여도 되나 싶었구요.
북벌을 함께 논하던
송준길님의 유품이나 생활하던 모습을 볼 수 있는게 아니여서
대체 무엇을 보라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어서 사진도 찍을 수 없고..
다만 동춘당이라는 현판을
우암 송시열님이 적었다는 것을 나중에 책자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일자로 된 동춘당 과 바로 안쪽의 종택을 실짝 둘러 보고 나왔습니다.
보물이라며???
어디가???
신랑에게 갸우뚱?? 했는데요.
한밭 문화유산 길라잡이에
나온 글귀를 보며 알게 된 사실
이런것도 어디 해설 판을 마련해 두지..
보물이라면서..
에혀
우아한 지붕과 곡선이
날아갈듯 유려한 것이 특징이고
보물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정갈함과 균제감을 보여주어
애써 치장하지 않아도 단아한 모습이
동춘 선생의 인품을 대변하는 듯하여..
지정 되었다고 해요.
그렇군요...
공원 보다도 못한 관리에..
허술한 설명에..
송준길의 업적 또한 살펴 볼 수 없는
허접한 내용까지..
동춘당은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라는 뜻만 적혀있네요.
이분 역시 찾아보면 업적들이 많은데
시민들에게 가까이 열려있는 만큼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해설사가 있다고만
하지말고
좀 ...왜 보물로 지정이 되었는지
누가 사용하고 그 사람은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되어진 설명판만 놓아도 좋겠네요.
여튼..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멀리 나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큰 문화재를 찾아
역사여행 떠나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다음 또 숨어있는(저만 모르는) 대전 가볼만한곳
투어를 하게 되면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내가 사는 대전이
가볼만한곳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거든요.^^
다들 어디다녀 오셨나요?
저희 송패밀리는 대전 가볼만한곳
우암사적공원과 동춘당에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서울에 궁을 보러갈까? 했는데
송파파가 많이 아파서
약기운을 빌려 가까운 곳을 가기로 했지요 .
대전에 20년을 살았어도
우암사적공원에 들어가 본적이 없어요.
어디 중요 문화재를 찾는다 해도 꼭 지방을 다니게 되지
근처에서 찾지 않았으니..
오늘 이렇게 대전 가볼만한곳을 다니면서
숨어있는 명소를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우암사적공원은
조선 중기 대표 유학자 송시열 선생께서
효종과 함께 북벌정책을 강구하던 곳이였어요.
또한 송자대전을 만든 곳이기도 하지요.
특히 한국에서 유일하게
수맥을 흐르는 통로를 그대로 보존한
남간정사는
오늘 KBS에서도 촬영을 하고 갔다해요.
들어서는 입구 부터 연못과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개울의 물소리
남간정사 앞으로 큰 연못과
주변에 물길이 어우러져서
정말 특이하게 조성이 되어있었어요.
앞이 연못기에
들어가는 입구도 뒤로 돌아서 가야 한다죠.
이런 대표적 유적지로는 석굴암이 있죠.
물론 일제시대때 이렇게 물이 흐르는 자연경관을
살려 과학적으로 건축한 것을 그들은 알 수가 없으니
시멘트를 발라 지금 엉망이 되었지만
남간정사는 잘 살아 남았네요.
인조때 금나라에게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낸
효종이 북벌정책을 펼치려할때
송시열 선생이 힘을 보태게 됩니다.
물론 나중에는 허울뿐이라고 하여
효종이 승하 하자마자 내쳐지게 되지만
이곳에서 제자를 기르고
"주자 와 율곡 이이" 의 뜻을 받들어
송자대전을 집필하니
대단하셨던 분입니다.
이렇게 특이한 곳인데
그냥 유형 문화재 4호 라니...
아마도 우리나라 궁을 비롯해 몇몇 곳은 렇게 물길을 살려
조경한 곳이 일본에 의해 다 망가졌을텐데 말이죠.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며 보존이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좀 더 큰 유물로 지정되서
많은 분들이 보고 알게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간정사 바로 앞 경치 입니다.
와~소리가 절로 나고
정말 너무 이쁘에
이런 경치에서 책읽으면 머리가 절로 맑아질것 같습니다.
워낙 터가 넓기에
걸어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인함각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해설도 들을 수 있고
우암선생의 영상자료도 볼 수 있어서
진짜 알찬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연보가 제일 먼저 들어옵니다.
천재적 두뇌를 가진 아버지 송갑조님
지금 으로 따지면 행시와 사시에 다 패스한
생원시 진사시에 다 합격을 해 놓고도
벼슬길에 올랐을때 광해군이 서궁에 유폐시킨 인목대비(선조의 계비)를 배알하였다하여
결국 쫓겨나 송갑조 선생은 아들 교육에 힘을 쓰게 됩니다.
송씨가 송촌동 선비마을에 자리잡게 된 사연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전 그 당시에도 딸들에게도 재산을 똑같이 나눠 주었다고 해요.
송명의 선생이 회덕황씨부인과 결혼하여 의 친정쪽으로 내려오는데
황씨부인이 받은 유산이 대전에 보문산 대청호 주변 일대의 땅을 물려받아서
이 곳에서 은진 송씨가 자리메김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때까지만 해도 외가는 엄청 중요한 자리였다는게 보이지요?)
고려말 송유(송명의선생의 손자) 부터 송씨가문이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된다고 하죠.
여튼 송시열선생은
태어날때부터 가진 배경이 학자집안에다
성품이 올곧기까지 한 집안입니다.
연보가 글씨가 너무 많아서 어려우시다면
7분 가량의 영상을 보시면
훨씬 정리가 쉽구요
해설을 부탁드리면
무료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인함각 한바퀴를 쭉 돌며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습니다.
27세때 장원 급제한
시험지를 사진으로 볼 수 있구요.
시험 겉면에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을 비롯해
외가 지역까지 쓰는 것을 보면
이때 과거는 개인의 출세가 아닌
집안을 대표하여 시험을 보는 것이라고 하니
엄청난 도전이라 생각이 됩니다.
효종을 독대하고 두달만에 효종이 승하합니다.
당연히 북벌정책도 물건너 가게 되고
벗처럼 친히 여기자던 효종께서 돌아가셨으니
슬픔이 대단하셨겠죠.
그리하여 남기신 부끄러울 '치'
이 분이 또 명필이라..
산과 계곡 바위에 이분의 글지체로 새겨진
바위가 엄청 많다고 해요.
그분의 초상화만 보아도
선비의 넓은 품이 보입니다.
따님이 한글로 쓰신 글도 보이구요.
효종이 사사한 초구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암사적공원에서
절때 빼놓지 않고 봐야할 것이
바로 송자대전판 인데요.
우암선생이 주자를 연구하며
문집과 연보등을 집대성한
'송자대전'을 찍어내던 목판입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처럼 곳에
그 목판이 보관중입니다.
임진왜란때 한번 불에 타 없어졌으나
그의 제자들이
1929년 남간정사에서 다시 판각한것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1929년이면 한창 일제강점기인데..
그의 제자들은 이 목판을 만들기 위해
그 시기의 수고로움을 어떻게 감당한 것인지..
가치가 정말 높다고 봅니다.
바로 눈앞에 '송자대전'이라고 되어있지요?
워낙 출중했던 인물이나..
그때 당쟁때문에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어요.
결국 나중에 영조때가 되어 그의 학문적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이 공인되어 졌습니다.
아직도 우암사적공원은 복원 중이라 하구요.
처음 복원을 시작하신 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데
송시열 선생의 뜻을 받들고자
여기를 궁처럼 짓고 싶다 하셨다 해요.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가볼텐데요.
명정문을 들어서면
강당으로 쓰던 이직당이 보이고
그 뒤로 선비들의 공부방인 심결재와 견뢰재를 볼 수 있답니다.
날씨가 좋아서
건물들이 자연속에 더 예쁘게 묻혀있는 것 같아
더욱 보기 좋게 사진으로 남았네요.
동춘당
대전 가볼만곳으로 찍어놓고 방문한 곳이
사실 우암사적공원 보다 먼저 드른 동춘당인데요.
최근에 보물로 지정 되었다기에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실망...실망이였습니다.
우선 동춘당은 우암송시열 선생과 어린시절부터
함께 동문수학한 송준길 선생의
호를 딴 별당입니다
그 동춘당을 기준으로
동춘당공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지요.
보물 209호로 지정된 동춘당 별당과
바로 옆 종택이 있는데요.
저는 어느 보물을 이렇게 막관리하고 사용하는지..
너무 황당했다고 해야하나..
별당 내에는
시 낭송회와 떡 장인이 만든 떡을
방 안에 전시하고 있었어요.
음....
글쎄요.
국보나 보물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아껴서 사용해야할것 같은데
주변에 호연재 김씨 종택이나
고택들은 다 문이 잠겨 볼 수도 없는데
보물이란 곳이...이렇게 막 쓰여도 되나 싶었구요.
북벌을 함께 논하던
송준길님의 유품이나 생활하던 모습을 볼 수 있는게 아니여서
대체 무엇을 보라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어서 사진도 찍을 수 없고..
다만 동춘당이라는 현판을
우암 송시열님이 적었다는 것을 나중에 책자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일자로 된 동춘당 과 바로 안쪽의 종택을 실짝 둘러 보고 나왔습니다.
보물이라며???
어디가???
신랑에게 갸우뚱?? 했는데요.
한밭 문화유산 길라잡이에
나온 글귀를 보며 알게 된 사실
이런것도 어디 해설 판을 마련해 두지..
보물이라면서..
에혀
우아한 지붕과 곡선이
날아갈듯 유려한 것이 특징이고
보물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정갈함과 균제감을 보여주어
애써 치장하지 않아도 단아한 모습이
동춘 선생의 인품을 대변하는 듯하여..
지정 되었다고 해요.
그렇군요...
공원 보다도 못한 관리에..
허술한 설명에..
송준길의 업적 또한 살펴 볼 수 없는
허접한 내용까지..
동춘당은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라는 뜻만 적혀있네요.
이분 역시 찾아보면 업적들이 많은데
시민들에게 가까이 열려있는 만큼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는 해설사가 있다고만
하지말고
좀 ...왜 보물로 지정이 되었는지
누가 사용하고 그 사람은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되어진 설명판만 놓아도 좋겠네요.
여튼..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멀리 나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큰 문화재를 찾아
역사여행 떠나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다음 또 숨어있는(저만 모르는) 대전 가볼만한곳
투어를 하게 되면
포스팅해 보겠습니다.
내가 사는 대전이
가볼만한곳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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