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가볼만한곳 과천 추사박물관 추사 김정희의 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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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추사박물관
경기도 과천시 추사로 78(주암동)02-2150-3650
www.chusamuseum.go.kr

과천시청 추사박물관
Clicking moves right 본문 제2회 과천시 추사박물관 유물구입 공고 2019.03.26 과천시 추사박물관 유물구입 공고 2019.02.01 [안내] 2019년 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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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벗들과 함께 경기도 과천으로 당일 여행을 다녀왔다.
과천에 대해서 그다지 많은 정보가 없었던 터라 셀레는 발걸음으로  첫번째로 둘러본 추사 박물관이다.
예전 서예를 배우기 위해 몇개월 동안 행서체에 몰입했던 추억이 아닌 기억이 떠오른다.
제자는 어느분에게 사사를 받느내에 따라 스승님의 서체를 따라가기 마련이니
자신이 누구를 마음에 담고 글을 써내려가는지 알수 있게 된다고
늘 붓을 잡을 때는 추사 선생을 떠올리며 입문하라 귀에 딱지가 않도록 말씀하셨던 기억이
수십년이 흐른 지금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추사, 과천에서 다시 태어나다.
과지초당(瓜地草堂)
과천은 추사 김정희이가 말년에 4년간 과지초당에서 지내면서
학문과 에술에 몰두하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곳이란다.

과지초당은 1824년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마련한 별서(별장)로 정원과 숲이 빼어나고
아름다운 연못을 갖춘곳이었다. 추사사는 과지초당이 조성될 때부터 깊이 관여했으며
김노경이 별세하자 가꺄ㅏ운 청꼐산 옥녀봉에 선친을 모시고
​3년상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1852년 8월 북청유배에서 풀려난 뒤
말년에 4년간 머물면서 학문과 예술의 절정기를 맞이한 곳이다.      (과천시)

추사 秋史 金正喜) 등 많은 호를 사용했다.(1786-1856)
본관 ; 경주
        자는 ; 원춘(院堂)
        호는 ; 추사(秋史)
        완당.; 노과(老果)

과천시의 추사 관련 사업
과천시는 1996년 <과천관련 추사 김정희 연구보고서> 발간 이래 추사를 조명하는 여러 사업을 추진하여
2004년 (추사글씨 탁본전을 시작으로 추사연구회(2011 추사학회)가 창립되었으며
일본인 후지츠카 아키나오의 자료 기증에 힘입어
2066년에는  추사의서거 150주년은 기면하는(추사글씨 귀향전)을 개최하게 되었단다.

추사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볼  수 있는 과천 추사박물관 견학

추사는 24세 때인 1809년 생원시에 입격했고
34세 때인 1819년 정월 성균관 유생에게 치르던 시험에서도 수석을 차지하여
.임금이 보이는 전시에 바로 나가
생연시 문과, 병과에 8위로 급제를 하였다고 한다

먼저 추사 김정희의 계보부터 읽고 가보자
추사 김정희는 월성위 집안의 봉사손으로 큰아바지 김노영의 양자가 되었다고 한다.

추사는 1786년 (정조 10년) 6월 3일 현재 충청남도 에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아버지 김노강 어머니 기계유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추사의 증조할아버지는 영조임금의 딸인 화순옹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다.
추사의 할아버지 김이주는 영조임금의 외손자로
영조임금의 보호와 관심속에 높은 벼슬까지 올라르게 되었고
추사의 큰아버지 김노영과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 역시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하니
추사 김정희는 높은 벼슬을 지낸 명문가의 자손이며 왕실가문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이다.

추사박물관
경기도 관천시 과천동
문의 ; 02-2150-365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과천시장이 정하는 휴관일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이 호조참판이던 때 동지부사로 연경에 가면서
김정희를 수행원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평소 추사가 만나고 싶어했던 고증학의 대학자인 78세의 옹방강과
청나라 관ㄹㅣ이자 고증학을 이끌어간 44세의 완원을 만났고
이들은 청년 김정희의 총명함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음에 놀라 해동에서 제알가는 학자라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이어 김청희에게 금성학, 경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전수했다고 한다.

추사는 편지나 글을 쓰고 한가지의 사인이 아닌
그때에 따라 다른 인장을 찍었기 때문에 무려 70여개가 넘는 의사인을 갖고있었다고 한다.

1826년 (41세) 2월 암행어사가 되어 백여일간 충청우도에 판견되엇다.
당시 추사는 그곳의 지형상황과 충청도 관리 55명, 경기도 관리 4명의 근무실태를 살폈으며
삼정(전정, 군정, 환정), 안면도의 송정(소나무 보존), 바닷길 개설 등도 보고했다고 한다.
안면도를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유독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나무숲을 만나게 되고 거닐어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역시 알고 가면 보인다.란 말에 공감하게 된다.
무심코 다녀왔던 여행지에 이런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태안 안면도수목원과 금강수목원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걷게 될 것이이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모형 (北漢山 眞興王巡狩碑 模型)
1816년 추사는 친구 김경연과 북한산에 올랐다가  이 비석을 찾아냈다고 한다.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이북까지 영토를 넓힌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음을 알아냈다..
이비석은 조선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무학대사가 세운 비석으로 알려졌었지만
이듬해 추사는 친구 조인영과 또다시 가보고 신라 시대의 비석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알기 쉬운 추사해설집)

추사의 굳세고 힘찬 필치
대평두부과강채 ;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요.
고회부처아녀손 ;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이네
(진흥북수고경) 현판
경주 안강의 옥산서원(玉山書院)  현판
서울 강남의 봉은사 판전 (板殿)
이 판전은 추사가 서거하기 3일전 에 썼다고 알려지고 있다.
해서체
제주도 유배시절 마추사의 마음을 담아 그렸다는 세한도

추사는 1844년 여름 이상적(李尙迪)(1804~1865)에게 세한도를 그려주었다.
세한은 <논어> 자한 편에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묵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데서 나왔다.
이상적인 제주시절 중국서적을 보내주는  등 추사에게 성심을 다한 역관 제자로
변치 않는 마음에 보답하는 뜻으로 추사가 이를 그련준 것이란다.

황소경세문편
이한복 중추사동귄 임모作 (1940년 )
(추사를 위한 송별모임을 그린 그림)

​불이 선란도
추사는 예서와 행서가 특히 돋보인다고 한다.
강철 처럼 굳세고 힘찬 붓놀림과 각지면서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한
글씨에서 추사만의 파격적 형식을 보여준단다.
(알기쉬운 추사해설집)

추사박물관 네부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선란도

​추사의 청조 학문에 대한 견해

해동금석원<해동금석영기>

추사 가문과 치원 황상

과천 추사박물관 관람 요금 안내

추사박물관 관람 요금 (개인 및 단체)요금
어른 2,000원    단체 1,000원
중,고생 및 군인 1,000원        단체500원
초등학색 500원      단체 300원
6세 이하 미취학 아동 무료
65세 이상 어르신 무료
추사박물관    무료해설 시간 안내
1회    11:00
2회    13 ;00
3회    14:00
4회  16:00시

과천 추사박물관 이용안내와 관람료와 전문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잇으며
이외 다양한 체험프르로그램과 초, 중교학생을 위해
신청하는 각 학교로 찾아가는 문화역사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한다.

추사가 짓고 쓴 해봉대산 화상관

추사가 만난 사람들
옹방강, 완원 , 초의선사
마주 앉은 추사와 초의선사

제주도 서귀표 김정희 유배지

서귀포 유배지
제주도 방언으로 안채를 안거리 바깥채를 밖거리라 한다.
돌을 쌓아 이영만 올려 둘러친 화장실을 볼 수 있다.
제주도로 귀양을 간다는 것은 이제 아무런 기대나 희방 그리고 재기란 꿈을 접고 살아야만 했던 곳이다.
외부로 나가 자유스럽게 생활을 할 수도 없게하는 죽은 목숨과도 같다고 해야할 유리안치되었음에도
추사는 이곳에서 세한도를 그려냈고 제주도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에를 가르쳤다고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수선화 적혀있는 하야꽃
네이버에 물으니 흰꽃나도사프란이라고 검색이 된다.
어떤것이 맞는지 매우 궁금하다. 만약 네이버가 알려준 꽃 사프란라면 수정해야할 부분인 것 같다.
이꽃은 제주도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라고 한다.

온화고 자비로운 모습을 간직한 추가 김정희의 영정

김정희는 1856년 10월 11일 과천 과지초당에서 생을 마쳤으며
이어 절친인 권돈인(1793~1859)은 이듬해 초여름 관복을 입은 추사 이한철(1808~1880)에게 그리게 하고
이를 예산 추사고택 뒤편에 세운 사당에 봉안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추사 김정희의 서명과 인장
작은 공간 속의 에술 추사인장

추사 인장 추사, 견한, 염, 김정희인, 불계공졸, 노완, 장자의 손, 찬제거사,
석인전석교 변욱각황우, 이견정대경 궁경삼십년, 언정, 용정, 솔진,
정희독본, 완당, 홍두, 우사씨

추사의 서명은 주로 편지에 쓴 이름과 자(字) 그리고 수결(手決; 사인)로 전한다.
또 편지 봉투에 찍은 봉함인(封緘印)도 몇몇 전한다.
추사는 인장을 새기는 전각에 조에가 깊었다고 하며 여러 인장을 사용햇다고 한다.

완당착득 상권
독서산방 현판 1813년
​완당 선생 전집
​붓과 벼루 복제

추사 김정희는 과천 시절 친구 권돈인에게 쓴 편지에  제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되지만
70년 동안 벼루 10개  붓 1,000 자루를 닳게했다
글을 쓰고 또 쓰고 했던 추사의 끝임없는 노력과 짐념을 읽을 수 있다.

​19세기 예산 김정희종가 보물 제547호  (국립중앙박물관(복제)

2006년 이 후 휴지츠카 아키나오는 선친의 뜻을 따라 소장하고 있던
추사 작품과 자료 전부를 과천시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과천 추사박물관에는 서화류 70점, 서적 2,500요 점, 사진, 유리원판 등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추사에 대한 연구 열정이 깊엇던 두 학자의 기증으로 마침내 현해탄을 건너온 추사 자료들을 보ㄹ 수 있다.

<세한도>의 다섯 번째 소장자 기증
후지츠카 치카시 부자
후지츠카 치카시 1937년
★ 인장과 인장함
★인보함, 망원려인상,
★중국으로 가는 세한도에 주는 시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귀한 자료들을 기증하신 분들의 명단
추사박물관의 건립을 기념하여 추사 작품을 기증하신 분들이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영구히 그 이름을 야기에 새깁니다.란 글귀와 함께 한쪽에 이러한 게시글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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